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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독후감

by bptyc

다른 책의 독후감과 다르게 한강에 대해 쓰려니 부담감이 마구 생긴다. 대강 쓰자니 작가가 오랜기간 공들여 써온 책에 대해 예의가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거창하게 쓰자니 할 얘기도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아 고달플 것이다. 그래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부담없이 쓰련다. 한강 10권을 다 읽고나서 제일 처음 들었던 생각은 "개운하다" 는 것이었다.

아마 나와 같은 시대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제대로 된 현대사를 배운 적이 없을 것이다. 국사교과서 맨 끄트머리에 조금 붙어 있는데다 시험에도 잘 출제되지 않아 선생님이 제대로 짚고 가지고 않는다. 거기다가 대다수의 중,고교 학생들은 현대사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합격통보를 받을 즈음에 아빠가 나한테 당부를 했던 것은 딱 두개였던 것 같다.

하나는 참고교재니 전집이니 하는 책장사들한테서 책을 사지 말라는 것과 두번째는 데모를 하지말라는 것이었다. 허나 이게 웬걸. 막상 대학교에 가보니 늘어선 것은 토익, 공무원, 경찰, 기사시험 학원 광고지 뿌리는 사람들이었고 돌아다니며 전집을 파는 책장사는 보도 못했다. 그리고 데모로 말하자면 내가 대학교 다닐때는 이미 데모라는 게 시들해져 있었다. 많지도 않은 그 데모들도 거의 학생회 소속 학생들만으로 이루어진 데다가 그 내용들 또한 등록금 인상반대, 본관 점거, 미군협정 반대, 아리랑 공연 찬양(?) 등으로 그닥 일반 학생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왜냐? 부모가 학비 대주는 애들은 공부나 하면 되고, 그렇지 못한 애들은 아르바이트 하기 바쁘고, 또 그런 시간이 있으면 연애하고 놀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나름대로 역사를 좋아해서 이런저런 책을 많이 읽었지만 8.15 광복이 되고난 후부터는 나의 지식 한 부분이 댕강 잘려있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학교에서도 대강 가르칠 뿐만 아니라 나조차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그런지 현대사는 어렵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찰나에 '한강'은 나에게 그 끊어진 부분을 대강이나마 이어주었다. 뭔가 모르게 나의 생각이 주욱 이어진다는 느낌은 본인 아니고는 잘 모를 것이다. 한강은 6.25 전쟁 이후부터 광주민주화 항쟁에 이르기까지 당시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 시간속에서 우리는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읽는 내내 나는 안타까웠다. 본래 맑고 순수하던 사람들이 정치의 논리로, 경제의 논리로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자기 몸이 과로로 죽어가는 줄도 모르면서 돈에 혈안이 되고, 조그마한 권력 끄트머리에서도 그 아래를 짓밟으며, 그 과정속에서 서로를 불신하고, 남을 시기하며, 내 것만 챙기게 되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실인 것인가.

우리나라 국민이 언제부터 그렇게 돈에 혈안이 되어 아둥바둥 했었던가. 정말 먹고 사는 문제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가. 그렇게 일으킨 경제발전은 또 무엇인가. 물론 그런 과정속에서도 서로를 돕고 이해하고, 사랑도 싹트지만 그런 것은 작은 한 단면같이 보여 나는 안타깝다. 그 책을 읽은 후에 나에게 당장 현실로 반응이 온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제는 더이상 어떤 뉴스의 얘기도, 어떤 신문의 기사도 100%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력을 압도하고, 기사를 매수하고, 사람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보이지 않는 힘이 이 대한민국이란 땅에는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것은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던 대통령도 마찬가지고,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며, 기업인도 마찬가지인데다,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무섭고, 세상이 무섭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너무 비관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아마 한동안은 이런 생각에 빠져있을 것 같다.

이런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봐야 뭐할 것인가. 결국은 나 자신밖에 믿을 게 없는 걸까. 조정래 작가가 독자들한테 이런 것만을 알려주려고 한 건 분명 아닐 것이고, 나 또한 이런것만 느낀게 아니라 여러가지 긍정적인 감상도 많지만 제일 큰 뼈대만 얘기하려니 이렇게 비관적으로 되고 말았다. 골치가 아프니 얘기를 돌려보자. 내가 한강을 읽으며 큰 웃음을 터뜨린 부분이 몇 개 있는데 그 부분은 모두 임채옥이 말할 때이다. 배배 꼬거나, 밀고 당기거나, 꾸미지 않은 직설적인 그녀의 사랑 표현은 요즘 시대에 흔치 않은 여자의 사랑법인 것 같다. "오빠가 점심을 굶거나 추위에 떠는 것도 나한테는 고통이에요." - 유일민의 학교로 느닷없이 찾아와 스키파카를 내놓으며 하는 말, 사실 이때는 울컥함이 더 컸다. - "아주머니~ 제발 외박 되게 해주세요. 제가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해드릴게요. - 유일민이 군복무를 하고 있는 강원도 인제의 부대로 무작정 찾아왔는데, 시간이 늦어 면회가 안된다고 해서 어쩔수 없이 혼자 '서울장'이라는 여관에 투숙했다.

여관집 여주인이 예전에는 부대로 면회객이 찾아오면 외박이 됐으나 지금은 잘 안된다고 하자 유일민과 같이 잘려고 온갖 계획을 세워온 임채옥은 급실망을 하면서 아주머니를 붙들고 사정을 한다. 무슨 여관집 아주머니한테 이런 사정을 하나 싶어서리..ㅋㅋ - "아주머니~ 제발 음식들 좀 구해주세요. 제가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해드릴게요." - 여주인이 임채옥의 하는 행세를 보아하니 돈 있는 집 애 같아서 제대로 뜯어먹어볼 요량으로 졸병들 면회올때 먹을거 바리바리 안 싸가면 그 졸병은 들어가서 고참들한테 엄청 맞는다고 겁을 주었다. 그러자 임채옥은 기겁을 하며 미처 음식을 준비해 오지 못했다며, 아주머니한테 구해달라고 사정을 한다. 역시 돈이 많으니깐 펑펑 돈을 쓰는구만..

그래서 그 밤에 음식은 장만했나 몰라.... - - 대사는 잘 기억이 안난다. 나중에 유일민과 재혼하면서 뜬금없이 제주도로 여행가자고 그러더니 제주도에 도착한 그날밤에 택시 대절해서 타고 어느 바닷가에 세워달라고 하고는 홀딱 벗고 바다로 뛰어 들어가면서 무슨 비장한 글을 읊어대며 새로 태어나느니 어쩌니 할때 너무 웃겼다. 유일민은 그저 좋다고 따라하더라. - 유일민에게 이별통보 편지를 쓰며 그래도 우리는 영원한 부부라는 둥, 다른 남자와 결혼한 후에도 유일민을 먼발치에서나마 보려고 길을 빙빙 둘러서 장을 보러가는 둥, 몸과 마음이 온전한 하나인 그녀의 태도는 이리 생각하고, 저리 따져보는 요즘 여자들과는 완연히 다른 숭고한 그 무엇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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