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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제자를 읽고

by bptyc

최근에 슈브리에라고 하는 19세기 프랑스 성직자의 “참다운 제자”라는 책을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 가볍고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책도 우리의 독서생활에서 필요하지만 가끔은 이런 영신적 도움이 되는 무거운 소재의 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기독교 신앙을 밑에 깔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여러 현실적 조언들이 적지 않아서 정신없이 지나가는 우리의 생활을 바르게 정돈하는데 도움이 된다. 저자가 말한 대로 이런 책들은 우리의 힘든 삶에서 ‘십자가를 기쁘게 지기 위한 내적인 힘’을 우리에게 주는 단백질같은 내용들이다.

책을 읽다보면 19세기의 프랑스에서도 빈부의 격차, 가난의 문제, 허영과 사치의 문제가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한국과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세상이 사치와 부를 추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가난을 사랑해야 한다는 주장은 실제적으로 가난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위안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이 책의 전반적인 핵심 사상을 이루고 있다. 슈브리에는 구체적인 실천안으로 반지, 꽃, 장식품, 금,은,보석등의 외부적인 것들을 모두 없애고 자신을 순결과 검소로 치장하라고 설교한다.

이러한 금욕주의는 인간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는데 “세상 사람들과는 필요에 의한, 그리고 그들의 영혼의 이익을 위한 관계 외에는 너무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길지 않은 우리 인생에서 왜 이런 극단적인 처방을 내리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지만 거부감이 들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은 이 책이 시종일관 인간의 근원적인 악함과 은총이 없으면 우리는 결국 늘 악만 행하게 된다는 인간적 불행을 저자가 예리하게 관찰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무리 겉이 아름답고 부유하고 학력이 좋아도 각자 각자는 남이 모르는 고통이 있고, 그 고통이 우리에게 죽음이 예비되어 있다는 것과 우리의 육체는 날마다 조금씩 죽어간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에 대한 연민, 동정이 이 책을 읽는 여러 독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은 너무나 약하고 쉽게 넘어질 수 있으니 우리는 모든 인간관계, 심지어 어린이들과의 관계도 경계해야 하며 감각적 만족을 추구하는 사랑은 결국 죄만 남게 된다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있는 관능적인 사랑에 대해 조언을 하는 부분은 21세기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신앙인인 우리들은 항상 예배에서든 대중매체를 통해서든 다양한 설교와 말씀을 접하게 된다. 그 많은 말씀들이 단순히 종교적 메시지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메시지를 전하는 자가 살아있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점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200년 전의 책이 지금도 읽히고 많은 이들에게 빛을 주고 있는 것은 슈브리에 선생의 삶 자체가 “ 참다운 제자”의 삶이었으며 자신의 글로 적은 모든 행동강령을 스스로 실천하고 살아갔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 하나하나도 신앙을 가지고 먹어야 하고 우리는 남들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고 나은 음식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 말이 설득력이 있는 것은 그 스스로가 가난한 삶을 선택하고 자신도 박한 음식을 먹으면서 그 음식도 못 먹고 있을 더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며 연민의 정을 잊지 않은 슈브리에의 진실한 자세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본인도 권두에 나오는 구절처럼 ‘인생이라는 십자가’를 기쁘게 지기 위한 내적인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스스로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내적인 힘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성탄절이 다가오는 이 시기에, 사랑하는 학생들과 여러 선생님들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에게 주시기를 기도하며 이 짧은 독후감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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